두뇌성장의 결정적 시기는 12세까지
그린나래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려서 배운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현대 과학은 인간의 뇌 발달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에 주어진 자극과 경험이 어른이 되어서 인격과 사고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냈다.
아기는 미완성의 뇌를 갖고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거의 완전한 개체로 활동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신생아는 태어난 뒤에도 엄마의 뱃속에서 자랄 때와 똑같은 속도로 뇌가 성장한다. 만 한 살이 되어야 아기의 뇌 성장 속도는 주춤해지기 시작한다.
반면 다른 동물은 엄마의 뱃속에서 뇌가 대부분 완성돼 나온다. 따라서 인간의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유전자에 의해 자동으로 뇌의 회로가 만들어지는 것보다 세상에 태어나 환경적 자극에 의해 사회적으로 프로그래밍되는 비율이 훨씬 높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 차이이다. 인간은 뇌의 성장에 미치는 환경적 영향이 훨씬 큰 것이다.
보통 침팬지나 포유류는 아기의 뇌가 어른 뇌의 45% 정도 크기가 됐을 때 세상에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은 어른 뇌의 25%에 불과할 때 세상에 나온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여성의 골반이 좁아진 반면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뇌는 눈 덩어리처럼 커졌기 때문에 12달이나 조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태어난 아기가 갖고 있는 뇌세포 즉 뉴런의 숫자는 1천 억 개로 어른의 뉴런 숫자와 같다. 20대가 되면 뇌세포는 매일 10만 개씩 줄어드는 반면 생기는 뇌세포는 극히 적다. 뇌세포의 숫자는 태어날 때가 가장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뇌는 커지고 성장한다. 태어날 때 350g에 지나지 않는 뇌가 생후 1년이 되면 거의 1,000g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뇌가 커질까? 뇌세포의 숫자는 거의 고정돼 있지만 세포와 세포 사이를 잇는 회로가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 회로가 복잡해지고 정교해지면서 뇌의 부피와 밀도가 증가하고 지능과 감정이 발달한다.
이렇듯 아이가 태어날 당시에는 느슨했던 뉴런 간의 결합이 강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경험과 감각이다 . 특히 출생 첫 해 아이들의 뇌 중심부에서는 뇌세포 간의 회로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만들어진다.
시카고 대학의 소아신경학자들이 죽은 아기의 뇌를 해부했다. 놀랍게도 시각을 관장하는 뇌 피질층의 시냅스 회로는 출생 직후 뉴런 한 개당 2천500개에서 여섯 달 뒤에는 1만8천개로 늘어났다. 뉴런 하나가 무려 1만8천개나 되는 다른 뉴런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처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는 3살이 될 때까지 일생을 통해서 가장 활발하게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뇌의 시냅스 회로 밀도가 가장 높아지는 것은 10살쯤이다. 이어서 사춘기에 접어드는 12살이 되면 시냅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뇌세포는 평생에 걸쳐 평균 1초에 하나씩 죽는다. 따라서 사춘기가 되면 뇌의 발달은 어느 정도 끝나게 된다고 신경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사춘기부터 시냅스 회로는 마치 정원에서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 줄어든다. 자꾸 쓰는 것은 강화되고 불필요한 시냅스를 솎아내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뇌는 하나의 인격체가 된다. 결국 이 살아 남기 경쟁에서 생존하고 강화된 시냅스가 인격을 만들고 마음속에 독특한 감정 패턴이나 사고 방식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육은 뇌의 발달이 가장 활발한 유치원 그리고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인 어린이 때 가능한 많은 시냅스 연결을 만들고 유지하도록 하는 데 모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어린이에게 풍부하고 다양한 상황과 환경적 자극이 주어져야 한다. 뇌는 자극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렸을 적에 시각, 청각, 촉각을 통해 많은 자극을 주고 다양한 주장과 견해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 외국의 새로운 환경과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좋다. 또 외국어도 초등학교 때 배우는 것이 나중에 중고생이 되어 배우는 것보다 빠르고 효과적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어린이의 뇌는 어떻게 될까? 뇌의 특정 부위의 특정 능력이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에 이 부위를 사용하지 않으면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는 끊어져 사라지고 만다. 시냅스는 뇌에서 항상 ‘살아남기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후 4∼12주 사이의 어린 고양이의 왼쪽 눈을 며칠 동안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만 보게 하면, 왼쪽 눈과 시각 대뇌피질을 연결하는 시냅스가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왼쪽 눈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이 오른쪽 눈과 연결되게 된다. 뇌의 시냅스는 자극이란 먹이가 존재할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인간의 뇌는 용량이 제한되어 있는 반면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은 평생토록 지속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은 모두 회로의 형태로 뇌에 기억된다. 만일 불필요한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면 결국 언젠가는 용량 초과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정리하지 않으면 결국 용량 초과로 컴퓨터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늘 회로를 청소해 불필요한 것을 지우는 속성을 갖고 있다.
사춘기가 지났다고 사람의 뇌가 전혀 바뀔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 이후 뇌에서는 불필요한 가지와 시냅스를 솎아내는 작업이 진행되지만 한편에서는 뇌세포들이 끊임없이 다른 세포들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다만 사춘기의 시작을 정점으로 해서 그 이전 시기는 시냅스의 연결이 삭제보다 활발한 반면, 사춘기 이후에는 균형 상태가 바뀌어 삭제 작업이 연결 작업보다 활발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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